세상에 하찮고 쓸모없는 것은 없다
산밭의 돌멩이 하나도 제자리에 있고
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의 관계 속에서
무언가 은밀한 일들을 하고 있으니
- 박노해 ‘산밭의 돌멩이 하나도’
사진 Indonesia, 2013.
산밭을 일구다가
골라내도 끝이 없는 돌멩이와 싸우다가
계절이 한 바퀴 돌고 나서야
내 어리석은 열심을 뉘우쳤다
자갈 하나 없이 정갈한 산밭은
햇살에 가물어 쩍쩍 갈라지고
싹들은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
나는 오래된 산밭의 파릇하고
생기 찬 싹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
다시 굵직한 돌멩이들을
산밭에 심어가기 시작했다
경사지고 물 없는 산밭에서
돌들은 골칫덩어리가 아니라
밤이면 별빛을 모아 이슬을 맺히게 해
싹들의 뿌리를 적셔주는 것인데
동그랗게 돌아가는 우주의 눈으로 보면
쓸모없는 듯한 산밭의 돌멩이 하나도
다 생각이 있어 거기 있고
다 창조를 위해 제자리에 있고
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의 관계 속에
무언가 은밀한 일들을 하고 있으니
세상에 골라내 버려야 할
하찮고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
다만 제자리를 지키며 돌아가는 것뿐이라고
-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‘산밭의 돌멩이 하나도’
https://www.nanum.com/site/554886
출처: 박노해의 걷는 독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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